얼마전 환의사 시간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에 관련되어 나름 생각나는 점들이 있어 끄적여본다.
미리 말하지만 난 아직 정확히 의료 정책이나 보건 정책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냥 인터넷이나 신문, 또는 어른들의 말씀을 통해 주워들은 것이 거의 전부이다. 따라서 아래 글에서 분명 내가 잘못 알고있거나 반대로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지적해주셨으면 한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치과에서 이를 때울 때 쓰는 재료 중에 ‘금’이랑 ‘아말감’이라는 것이 있다. 이 중에 금으로 때우는 것은 보험 적용이 안되고 아말감으로 때우는 것은 보험적용이된다. 보험으로 적용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환자는 저렴한 가격에 의료시술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단지 그것 뿐일까. 의사에게 있어서 보험에 적용된다는 것은 그 의료행위의 비용을 정부로 부터 받는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 의료행위의 횟수를 보고해야하는 것이고 곧 세금으로 이어진다. 그럼 비보험 의료시술은 어떨까. 그 의료시술을 해주고 게다가 현금으로 돈을 받으면 아무도 모른다. 이것이 의사들이 탈세를 하게되는 기본 원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자세한건 나도 안배워서 모르겠다. 이것은 단지 내 생각이고 보고 들은 바일 뿐이다.)
‘보험 수가가 낮다’라는 말은 아마 그 의료 시술을 했을 때 정부로 부터 받는 비용이 적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흔히들 우리나라는 의료수가가 잘못되어서 위험하고 생명이랑 관련된 시술일 수록 보험 수가가 낮게 반영되어있고, 생명이랑 큰 관련이 없는 피부 미용 영역은 비보험이라 부르는게 값이라고. 그래서 힘들고 생명을 다루는 부담을 갖는 소위 흉부외과, 신경외과 등의 외과 영역에 전공의들이 점점 사라져 간다. 일은 그 어느 전공의보다 고되지만 보상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물론 이런 정책에 있어 장점은 있을 것이다. 그만큼 위중한 질병을 재정적인 여유가 별로 없는 사람들도 쉽게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아무튼 이러한 무언가 불합리하다고 여겨지는 의료정책 중에 하나가 Technology에 대한 무한한 신뢰라고 볼 수 있다.
교수님이 질문을 던져주셨다.
“여러가지 CT, MRI, PET와 같은 진단 기술이 발전했는데, 그러면 그만큼 질병을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왜 Sue(고소)는 점점 늘어나고 있을까요?”
물론 나는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기술이 발전했으니 병을 당연히 고쳐야 한다는 환자들의 생각때문이 아닐까. 교수님은 그 이유를 의사-환자간의 communication 부재에서 찾는다. 과거 진단기술이 발달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의사가 환자의 얘기를 듣고, 물어보고, 보고 듣고 만져보고 함으로써 병을 진단했었다. 물론 오진률도 높았을 것이고 발견하기 힘든 병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에는 유대관계가 있었다. 의사는 환자의 아픔을 느끼고 이야기를 들어주기위해 애쓰고 병을 말견하기 위해 대화를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과정이 모두 CT 한장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혈관조영술이었던가 한번 하는데 200만원이 넘는데 우리나라는 10만원 정도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CT는 그냥 너무 평범한 진단기구가 되어서 일반병원에는 꼭 한대씩 들어간다. PET도 최근에 보험적용이 되어서 기존에 백만원 단위에서 십만원 정도로 저렴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의사가 환자를 위해 대화를 5분 더 한다고 돌아오는 이득은 단 한푼도 없다.
생각해보자. 기계처럼 몇분에 한명씩 CT를 찍으면 하루에 찍을 수 있는 수가 꽤 될 것이다. 이것에 보험수가를 곱한 값이랑 한명의 의사가 하루에 환자를 보면서 한 사람당 20분씩 사용한다고 해보자. 이건 도무지 비교할 수가 없는 수치가 나온다.
나의 어리고 많이 배우지 못한 학생의 입장에서 보기에 요새 보건 의료정책에 가장 문제가 되고있는 것은 의사가 환자를 환자로 보지 않고 돈으로 본다고 비난하면서 정작 환자를 환자로 볼 수 있는 여건은 왜 만들어주지 않는가라는 점이다.
교수님께서 우스갯 소리로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우리병원에서 가장 적자가 나는 것 3가지를 골라보면 1위가 수술, 2위가 병동환자, 3위가 외래환자 라고 한다. 수술은 아주 그냥 수술장에 들어가는 족족 적자라면서. 그리고 더불어 가장 수익이 나는 것 3가지를 골라보라고 하시면서 1위가 서울의대 강남 검진센터, 2위가 장례식장, 3위가 주차장 주차료라고 하셨다. 그래서 의대 교수들이 5분마다 환자 한명씩 봐서 하루에 수백명을 봐봤자 의료기기들로 가득찬 검진센터를 못따라 간다고 한다.
왜 요새 큰 병원들이 기를 쓰고 진단 장비들을 사들여오는지 아냐고, 검진센터가 생겨서 부모님께 효도하라고 30만원, 50만원, 100만원짜리 정기점진을 받도록 하면 환자들은 좋다고 신청한다고. 저 가격을 단지 의사가 환자본다고 할 때 쓰려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몰론 의사가 기계만큼 정확히 찾아내지는 못할테지만.
이 기계가 병은 의사보다 잘 볼지 몰라도 분명한건 환자를 의사보다 잘 보지는 못할 것이다.
병은 잘 나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픈 마음은 기계로 다스릴 수 없는 것 아닐까.
과거의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사의 영역은 점점 기계로 넘어가고 있다.
나는 어떤 의사가 되야하고, 어떤 미래를 준비해서 전공을 선택해야할지,
아무런 고민없이 살다가는 쓸모없는 의사가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가 필요없는 정확한 진단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대화를 하는 인간적인 의사를 바라는 사회분위기인 것 같다. 의사의 역할과 위치도 급변하는 시대에 맞게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아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