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건 다 중국때문이다

#. 왜 옛날에 중국여행도 다녀보고, 일본여행도 다니다보면, 왜 우리나라는 그럴싸한 ‘성’이 없는가? 라는 질문이 떠오른 적이 있다. 남대문의 성벽도, 그나마 그럴싸한 문경세재의 성벽도 보면 그렇게 높지도, 크지도 않다.

#. 오히려, 곳곳에 다니다보면 있는 ‘산성’의 존재는 무엇인지, 홍대선 작가의 유튜브들을 보다보면 그 이유를 어느정도 찾을 수 있다.

https://youtu.be/aKQCnDhTXjQ?si=RUN1lTUIZsChBvSh

#. 우리는 저들과 평야에서 회전(pitched battle)을 벌이면 망한다. 물량을 이겨낼수 없으니. 우리가 알고있는 많은 대첩들은 높은 확률로 적이 퇴각할 때 섬멸을 한 것이었다. 그 이유도 홍대선 작가가 말하길, 적이 퇴각할때 완전히 밟아야 적(=중국)의 회복을 최대한 늦출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절멸전. 우리가 10번을 이겨도, 한번만 지면 그 순간 멸망에 이르는 상대방이 옆에 있다는 것은, 단군이 지독하게도 부동산을 잘못 택했다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아 그런데, 요동지방에 석유가 나온다는 것을 보면, 단군이 잘못했다기 보다는 후손들이 잘못한게 맞다)

#. 산성이 발달한 이유는, 진짜 다 포기하고 모든 인구가 산성으로 도망쳐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인구의 손실을 최대한 막으며, 적을 최대한 화살로 쏴서 없애고 (사격 민족의 DNA가 여기서 출발했다) 사생결단을 하는 것이다.

#. 내가 생각하건데, 이 지점에서 우리 민족성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항상 내부적으로 싸우고, 서로 등쳐먹다가, 외부로 부터 고난이오면 또 기가막히게 단결해서 이겨낸다.

마법의 단어가 등장한다

#. 어쩌면 이 지점에서, 대한민국 헌법 37조가 생겨난 것이 아닐까 한다. 한두명이라도 더 있어야 ‘우리’라는 집단이 살수 있기 때문에, 개인보다는 집단이 중시되는 문화가 생겨나고, 한두 사람 튀는 꼴을 못보는게 아닌가. 아주 무섭게도, 공공복리라는 마법의 단어가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 아닐까.

#. 의사 네 이놈들. 공공복리를 위해 좀 맞자.

#. 엊그제 4년차가 되었어야할 사직 전공의들의 일부가 군입대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작년 2월쯤엔, 한두달 뒤면 끝나겠지, 6개월 뒤면 끝나겠지, 그러다가, 탄핵되었으니 끝나겠지 했는데, 벌써 1년이 넘어서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또 원상 복귀 시키고 전공의들이 다시 돌아온다고 뭐가 해결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공공복리를 위한다는 미명하에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당하는 현장을 목도하였고, 그러고보면 이미 코로나 시절에 생겨난 ‘업무개시명령’ 이라는 희대의 법안이 나오는대도, 아무소리 못하고 있었던 상황이 여기까지에 이르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 엉망이다. 전공의들을 볼 낯이 없고, 지금이라고 교육을 제대로 해줄수 있는 시스템도 아니고, 그렇게 변해가는 것 같지도 않고. 준비하고 있는 것도 없는 것 같고.

결국 다 중국 때문이다?

당연히 웃자고 지은 제목이다. 그리고 현실은 전혀 웃기지도 않다. 아래에서 올라온 일, 위에서 내려온 일을 위해 나도 (그만두지는 못하고) 1년간 ‘내 일’을 포기했다. 아직은 버틸만 하지만, 점점 찌르면 터지기 일보직전인 풍선이 되어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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