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을 너무 많이 잤더니 밤에 잠은 안오고 해서 문득 koi4u.net 이라는 사이트에 들어가보았다. 정보올림피아드 커뮤니티 사이트인데, 쉽게 고3 학생과 오르비 사이트의 관계를 생각하면 된다.
아무튼 잠도 안오고 항상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어서 잊어버리기 전에 적어놓는다.
그냥 혼자 옛날 생각에 자유게시판 글들을 읽다보니 여러 내용들이 있었는데, 역시나 어디에 가도 있는 시험보고 좌절하는 사람과 괜히 찌질되는 사람도 있었고, 상을 받은 것이 없어 대학진학을 고민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튼 나는 컴퓨터는 당시 유치원 때 하드볼 2(지금은 망한 야구게임이다)와 젤리아드(아직도 기억난다-_-), 고인돌(이건 좀 나중같기도 하고…)이라는 게임으로 처음 접했는데, 당시 플로피디스켓 5인치짜리 하나를 쓰는 286 컴퓨터였다.(3.5인치는 당시에 있지도 않았다!, 게다가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컴퓨터 게임을 하려면 아버지한테 영어공부를 받아야 했었다는 것-_-).
부팅용 디스켓을 넣고, 그 이후엔 그것을 빼서 게임을 실행시켰었다.(5인치 FDD드라이브가 2개 달린 건 그나마 양반이었다). 그 이후 우리집 컴퓨터도 FDD가 두개가 달리게 되었고 대망의 386 컴퓨터로 넘어간 것이 대충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기도 하고…이 때즘 윈도우3.1이 나왔었다. 하드디스크라는 개념도 어린나이엔 충격적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윈도우 3.1의 카드게임은 그 때 처음 해봤었다.
이 당시에는 정말 지금처럼 꽃으면 사용가능한 하드웨어의 구조가 아니었다. 특히 게임에서는 VGA(그래픽카드) 호환문제가 정말 심했는데, 역시나 게임 덕분에 컴퓨터 그래픽카드를 바꾸면서 업그레이드라는 것을 하게 되었고, 이 때쯤에 CPU니 RAM이니 메인보드니 하는 것들에 대해 알았었다.
후에 윈도우 95는 정말 대충격이었다. 형이랑 둘이 컴퓨터를 붙잡고 ‘오~~’하는 탄성을 질렀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인터넷 통신을 처음 했던 것은 언제인지 기억이 잘 안나는데, 아직도 기억나는 추억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이름 잘 기억안나지만 같은 반에 모 친구가 있었다.(얼굴은 아직도 대충 기억난다) 참 신기한 것이 이 친구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어디선지 용케도 잘 구하고 다녔다. 그런데 그것의 출처를 물어보면 도무지 알려주지 않는 매우 약오르는 친구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대충 그것이 모뎀-지금은 줘도 안쓰는-을 이용한 통신으로 구하는 거라고 들었던 나는 컴퓨터에도 그 소프트웨어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실행을 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ATDT 01410‘.. 이 명령어를 치면 ‘하이텔’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이텔 뿐만아니라 이상한 사설 서비스도 접속할 수 있었는데, 형이 여기서 뭐 잘못받았다가 전화비가 무려 7만원이 더 나와서(지금도 이 정도면 의문을 갖어볼만 한데 당시 90년대 초반에는 꽤나 큰 돈이었다) 부모님이 통신내역을 뽑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 명령어를 그 친구는 1년 내내 알려주지 않았다.(당시엔 그 이후 소프트웨어처럼 쉽게 어떤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는 아이콘 따위는 없었다)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아마 이 서비스들이 지금 우리나라의 1세대 통신 서비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처음 ‘인터넷’을 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였다. 그 당시의 최고 빠른 인터넷은 ADSL로만 가능했었다. 내가 인터넷을 할 수 있었던 곳은 자격증을 따려고 공부하러 다녔던 컴퓨터 학원이었는데, 이 때 처음 WAREZ(와레즈, 불법 프로그램 공유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대충 이 시기에 Netsgo, Channeli 와 같은 2세대 통신 서비스가 등장하는데(1세대니 2세대 하는 것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서비스와 인터넷(WWW)의 가교역할을 해주던 포털 비스무리한 사이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전화로 바람을 일으켰던 NeoWiz도 이 때 처음 봤던 것 같다.
물론 그 당시의 ‘고수’들에게는 발끝에도 미치지 않았지만 이 중학교 1학년 부터 3학년까지는 정말 컴퓨터만 하고 살았다. 중2,3 때 동일이라는 친구와 함께 Web과 PHP를 논하던 기억이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다 적자면 너무 길것 같아 일단 패스.
대충 매일 저녁 6시부터 새벽 1~2시까지 컴퓨터만 죽어라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난 중3까지 정보올림피아드라는 시험이 있는지도 몰랐고, 시험이 있다고 안 것은 중3 대전 지역예선 한두달 전이었을 것이다.
그 때부터 카이스트 학생을 선생님으로 두고 시험을 준비했었으나 결과는 지역대회 동상(장려상이었나)으로 끝. 이 것을 계기로 대전시에서 직접 운영했던 정보올림피아드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서 다시 고1때 도전하여 은상. 그러나 몇 달뒤 전국대회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이 때 부터 슬슬 컴퓨터를 그만하고 수능으로 대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도 내가 컴퓨터를 전공하고 싶으면 대회를 포기하고 수능으로 전공을 택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준비해놓은 것이 아까워 고2때 다시 도전하여 대전시에서는 금상을 받았으나 이번에도 전국대회 선발전에서는 탈락해버렸다. 이 때 깨달았다. 난 족보 타는 것은 엄청 잘하지만 새로 만들어내는 것은 정말 못한다고
그러고보니 이 때 우리과 동기인 진호를 알게되었다.(이 친구는 전국대회에서 입상했다)
이렇게 고2 끝날 무렵에 나와 컴퓨터의 인연은 끝났고, 그 때 공부해놨던 C언어니 PHP, Java 같은 프로그래밍도, 알고리즘 같은 것도 다시는 하게될 줄 몰랐다.
그런데 정말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하기 싫은 공부하면서 평생 후회하며 살으라고 그런 것인지 난 의과대학에 오게 되었다.
(패임이라고 읽어야 한다. 솔직히 왜 이런이름을 지으셨는지ㅠ_ㅠ
아무튼 파임? 패인? 이런거 아니다)
그로부터 3년 뒤니까 내가 예과2학년일 때, 컴퓨터와 관련없는 음악반이라는 동아리를 통해 정목이형을 만났고 전산동아리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중학교 때 했었던 HTML, PHP나 Javascript를 정말 유용하게 쓰고있다. 다시는 나와 상관이 없을 것 같었던, 정말 즐겁게 배웠었던 유일한 분야인 ‘프로그래밍’을 취미로 계속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KMLE 검색엔진, 기껏해봐야 의학용어 단어를 검색하는 사이트이지만 이 사이트는 전국 의대생에게 있어서 가장 첫번째로 생각나고, 가장 많이 들어가는 사이트임에 틀림없다. 이 사이트의 개발자도 의사선생님이시다.(당시엔 의대 학생이었겠지)
우리 동아리의 1단계 목표는 바로 저 KMLE를 능가하는 사이트를 만드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Wikipedia처럼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한국형 의학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이런 큰 작업들이 내가 후배였던 상황에서 정목이형이나 형철이형, 상윤이형같은 진정한 프로그래밍 고수이신 선배들이 이끌어주셔서 완성할 수 있었다면 더할 나위없이 기쁜 일이었겠지만 선배들도 이제 졸업하시기 직전이고, 나도 어느새 본과 3학년이 되었다. 지난 2년보다 남은 2년이 더 기대되고 있지만, 아무튼 이번 방학동안에는 한단계 발전시켜서 뭔가 해낼 수 있을 실력을 갖추는 것이 목표.
쓰다보니까 너무 장황해졌다. 그래도 컴퓨터와 관련해서 기억나는 내용에서 절반도 안쓴 듯. 아무튼 이런 장문을 적을 여유도 있고 역시 방학이 좋긴하다ㅋ
2 comments
atdt01410검색하다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정말 즐거운 포스팅 잘보고 갑니다.
이 글도 벌써 9년전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