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좋아하셔서 음악반을 하고 싶어하셨다는 조ㅁㅁ 교수님의 수업 때 들은 이야기 하나.
Jacqueline du Pre (자클린 뒤 프레 : 1945~1987)
아는 것은 별로 없고 해서 그냥 다른 블로그에 있던 글을 받아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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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명한 여류 천재, 금세기 최고의 여성 첼리스트로 꼽히는 비운의 예술가. 영국 옥스퍼드 대학 교수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클린느는 세 살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악기 소리 가운데, 특히 첼로 음을 지적하며 그 소리를 내고 싶다고 졸랐다고 한다. 네 살 때 자기 키보다 큰 첼로를 선물 받고 다섯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첼로를 공부한 그녀는 카잘스와 토르틀리에, 그리고 로스트로포비치에게 사사해 어린 나이에 금세기 첼로계의 모든 흐름을 두루 섭렵하였다. 16세가 되던 1961년 런던에서 공식 데뷔 무대를 가졌고, 65년엔 뉴욕에 데뷔했다.
http://blog.paran.com/isadora55/2267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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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클린 뒤 프레에 대해 검색하다보면 엘가의 첼로협주곡을 강추한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아주 오래전의 연주영상이라 잡음이 굉장히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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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원본 동영상에는 1악장 부터 4악장 까지의 전체 분량이 모두 수록되어 있습니다만, 길이 제한 탓으로 1악장 후반부와 2악장 전반부만 올렸습니다. (불쑥 끊어지게 만든 것…참 죄송합니다..)
http://blog.naver.com/idea0853?Redirect=Log&logNo=100031525802&vid=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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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을 이어하자면…그녀의 나이 23세이던 1968년, 가족들이 탐탐치 않게 여기던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1942~)와 결혼했다. 바렌보임은 탁월한 연주자, 지휘자였으나 기회주의적인 사람이었고, 슬프게도 주변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바렌보임은 그녀를 자신의 이력에 최대한 활용했다. 28세가 되던 1973년, 그녀는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사실상 연주 활동의 막을 내리게 되고
오랜 투병 생활 후 42년간의 짧은 생애를 마치게 된다.
그녀가 잃어 버린 것은 첼로 뿐이 아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잃어 버릴 것이 없을 만큼 아무 것도 갖지 못했다. 최후의 비참했던 연주회로부터 시작하여 두 다리, 양팔 그리고 몸 전체의 균형을 잃었고, 사물이 두 개로 보일 지경이어서 책도 읽을 수가 없었다. 전화의 다이얼 돌리는 일도, 돌아눕는 일도 그녀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심지어 1975년 이후로는 눈물을 흘릴 수도 없게 되었다.
남편 바렌보임을 비롯하여 지인 들은 연주자로서의 생명이 끝난 이유로 뒤 프레에게 연락하는 횟수를 줄였고 차츰 아무도 찾지 않게 되었다. 바렌보임은 자클린느의 병중에 그녀와 이혼했으며 사후 한 번도 그녀 의 무덤을 찾지 않았다. 자클린느의 사후 바렌보임은 여러나라 평론가들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뒤 프레는 아무도 없는 밤에는 혼자 절망에 떨며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에게 와달라고 조르곤 했다. 뒤 프레는 병으로 쓰러져 휠체어에 앉아 보내던 시절 이렇게 고백했다. “첼로는 외로운 악기다. 다른 악기나 지휘자가 있는 오케스트라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첼로로 음악을 완성시키기 위해선 음악적으로 강한 유대를 가진 보조자가 필요하다. 나는 운이 좋아 다니엘을 만났고,그의 도움으로 연주하고 싶었던 곡을 거의 다 음반에 담을 수 있었다.”
그녀의 음반으로는 엘가의 협주곡(EMI)이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며, 코바셰비치와의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EMI)도 수작이다. 그녀의 미소와 그녀의 연주를 들으면 누구라도 자클린느 뒤 프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뒤 프레의 전기 작가 캐롤 이스턴은 읽기도 말하기도 힘들게 된 말년의 뒤 프레는 자신 이 연주한 엘가의 협주곡을 틀어놓고 멍하게 있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고개를 떨구며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삶을 견딜 수 있죠?”
http://blog.paran.com/isadora55/2267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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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트 맨 위에 재생시켜놓은 ‘자클린의 눈물’은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천재 첼리스트 자클린 두프레(Jacqueline Du Pre)를 위한 곡. 많은 이들은 오펜바흐가 한 젊은 첼리스트의 죽음을 애도하며 헌정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오펜바흐의 작품 목록엔 없었던 곡이다.
일설에 의하면 오펜바흐가 세상을 떠난 뒤, 첼리스트 토마스 베르너(Thomas Werner)가 그의 미발표 악보를 찾아냈고, 자신이 자클린의 죽음을 애도하며 ‘자클린의 눈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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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발성 경화증(multiple sclerosis)에 대해서 아주아주 간단하게 교수님 강의록에서 몇장 빼다 붙여놔본다.
우리 머리속과 척추속에는 이런 한덩어리의 구조물(뇌랑 척수)이 있는데, 그게 오른쪽 그림처럼 군데군데 손상받는 것이다. 자가면역질환으로 Demyelination이 기전인데 더 설명하면 나도 골치아프고 보는 사람도 골치아프니 생략.
하여튼 뭐 이렇다. 다발성 경화증(이하 MS)는 그 병 자체가 사인이 아니고, 그것에 의해 오는 신경적인 문제들. 예를 들어 팔이 잘 안움직이다던가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밥 먹기가 힘든 등의 합병증으로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진행성 병인데, 완치는 불가능하고 그냥 병의 진행을 늦추는 치료가 최선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건 덤으로…
자클린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졌었다.
힐러리와 재키 (Hilary And Jackie, 1998)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개봉을 안했을 뿐더러 DVD조차 나오지 않았으며, 흔히 말하는 어둠에 경로에 조차 존재하지 않아 이 것을 다운받아보려면 외국계 공유프로그램을 이용해야 하는데, 자막도 없어서 보기도 힘들고 게다가 영국식 영어발음이라 절반도 못알아들었다는 블로거의 글을 보고 좌절. 그러나 진심으로 구해보고 싶다. 실제 자클린이 연주한 음악을 영상에 얹는 식으로 만들었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을 뿐더러 재클린을 연기한 ‘에밀리 왓슨’은 이 영화로 1999년 영국 인디 영화 시상식 여우주연상, 2000년 런던 비평가 협회 올해의 영국 여배우상을 받았다고 하니 영화자체도 상당히 훌륭할 듯.
http://blog.naver.com/bornonjuly15?Redirect=Log&logNo=120042219343&vid=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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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저작권 참으로 많이 어겼구나…….OTL
네이버도 그렇고 파란도 그렇고 참 어이없게 오른쪽 클릭 금지와 소스보기 같은 것을 막아두는데 컴퓨터 약간만 다룰 줄 알면 다 뚤리는걸 아는지 모르는지…괜히 소스코드만 길게 만들어 쓸데없이 시간만 오래걸리게 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