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보다도, 최근의 소요騷擾 사태 속에서 부득이하게 수술이 미루어진 환자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미루는 수술들은 대게는 급하지 않다고 판단한 수술들인데, 이건 의료적 판단일 뿐이고, 개개인에게 급하지 않은 치료가 어디 있겠는가 싶습니다.
#. 딱히, 내 두배, 세배를 버는 동료 의사들을 끄집어 내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개원은 사업이고, 주변의 성공한 사업가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합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일 뿐인데, 나는 상급병원의 봉직의로 남는 것이 내 길이라고 생각했을 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는데, 제가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남은 흉터들을 치료하는데는 (지금 시점에서는 마치 적폐처럼 불려지는) 피부 미용하는 의사분들의 도움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이것은 불합리한 수가체계만의 문제도 아니고, 발전된 우리나라의 일반인들이 어디에 더 관심과 가치를 두느냐의 문제, 이제는 삶의 질을 더 중시하는데서 오는 현상입니다.
#. 올해 ‘상기도 이물 제거’ 라는 응급수술을 14건을 했습니다. 대게 1살 내외의 꼬맹이들이 잘못 삼킨 것들입니다. 이 수술은 ‘나’라서 하는게 아니라 병원의 시스템이 하는 것 입니다. 수술장에 들어가기 전에 응급실에서 아이의 호흡 및 폐 상태를 관리해줘야하고, 수술 후에는 소아과 선생님들이 관리를 해주셔야합니다.
수술에는 저와 전공의 한명. 간호사 두명. 마취과 교수님 한분, 전공의 한명이 들어갑니다. 어쩌면 심각하게 위험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도 있는, 무려 의료진 6명이 소송의 위험을 일부 둔 채로 진행하는 수술의 비용이 단 30만원입니다. 아무도 하고싶지 않은데 돈도 안되는 수술. 실제로 각 지역의 상급 종합병원 말고는 이러한 응급상황을 보지도 않을 뿐더러, 기구 세팅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고가 날 위험성을 생각한다면 한 10배는 더 줘야 세팅을 하지 않을까요. 여기는 국립대 중앙 병원이니까, 못하면 안되니까 목숨걸고 하는 것이고…
#. 의사라고 다 같은 위치에서 동일한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대학교수, 대학교수들 중 저같은 쪼무래기, 전임의, 전공의, 개원의 다 조금씩은 이해관계가 다릅니다. 그래도 그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 공통적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을 잘 짚은 YouTube 영상이 있어 아래에 링크를 붙어봅니다.
#. 정원확대는 다른 여러가지가 갖추어졌을때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의사들도 반성 많이 해야지…
#. 11만 의사 중에 1만 전공의가 전열에서 이탈했다고 대란이 일어난다면 그건 전공의 탓이 아니라 시스템 문제입니다. 왜 아무도 이걸 고칠 생각을 안하는거죠.
전공의들이 뛰쳐나가는 모습을 보니, 7년전에 USMLE 공부를 시작했던 제 모습이 오버랩되는 듯 합니다 (간만에 2년전 Step 3까지 끝낸 포스팅을 다시 열어봤습니다). 결혼, 가족 등으로 결국 마음을 접었지만. 그 때 미국을 가고 싶었던 이유는, 한국의 의료현실 보다 오히려 전공의 생활동안 겪었던 여러가지 불만때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월 300만원도 안되는 급여에서 일주일에 2,3일은 퇴근 못하는 일이 다반사인데, 주말에 병원나가서 환자보는게 당연한 시간 속에서 (지금 주80시간 얘기하는건 양반입니다. 라떼는 주100시간은 넘게 일했던것 같네요),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할줄 아는지 확신도 없었던 결과물이 너무 마음에 안들었던 것이어습니다.
전공의들을 정말로 잘 가르쳐주는지. 그냥 타이틀을 따러 들어와서 노동력만 제공하다 가는 것인지, YouTube에 미국 레지던트들이 올리는 내용들을 보면 본인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랑과 자부심이 넘치는데, 우리나라 전공의 생활을 보면 다 힘들다 힘들다.. 힘든데 보람차요.. 이러는데 힘든게 꼭 정상적이어야 하는가, 그 힘듦 가운데 버티는 원동력이 돈이든 미래든, 자리(position)이든, 뭔가 앞에 있어야 버틸 수 있는 것일텐데, 이제는 미래가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뛰쳐나가는 것이겠지요.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을 관두고 현재를 찾으려는 젊은 친구들이 점점 늘어나리라 생각합니다. 진짜 의료 대란은 이번 사태 이후에 시작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 무책임하고 인기만을 위한 정책은 많은 이들에게 생채기를 남길 것 같습니다. 전공의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깨닫고 병원을 향해 집단적으로 요구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갑과 을이 완전히 뒤바뀔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멀리서 등떠밀며 내 제자 내 제자 하지 말고 진짜 교육을 위해 신경을 써야합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