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아주 오랜만에 올리는 글

위 이미지는 본문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1. 올해 이직하면서 경험하는 수많은 변화들 중에 가장 큰 일은 ‘소아’ 진료를 다시 시작하는 점이었습니다. 병원의 가지고 있는 위치와 자랑스럽게도 (물론 뉴스위크의 순위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세계적인 수준에 랭크된 어린이병원이 있다는 점 + 시니어 교수님들은 소아 진료를 조금은 기피한다는 점들이 자연스럽게 소아 진료의 많은 부분을 제가 담당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2. 기관절개술(tracheostomy)라는 수술이 있습니다. 모종의 이유로, 목에 구멍을 만들어서 폐로 길을 단축시켜 호흡기를 보조하기위한 여러 용도로 사용합니다. 이비인후과에서 ‘두경부(목)’ 파트를 담당하는 전문의들이 가장 흔하고 익숙하게 하는 수술입니다.

#3. 병원의 특성상 고위험 산모가 많습니다. 이는 즉, 조금은 마음 아픈 문제를 달고 태어나는 아이가 많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야기는 #1 + #2 + #3이 합쳐져서 시작됩니다. 잠깐 문체를 바꿔 작성합니다.

 

[1] 6월 중순의 어느날, 오후 외래를 들어가려고 기다리던 점심에 갑작스런 전공의의 연락이 왔다.

“선생님, 분만실에서 급하게 기관절개술이 필요하다는데요?”

그 전에 생후 한 두달된 신생아의 기관절개술은 해봤지만, 막 태어난 아이의 수술을 진행했던 적은 없었다.

“소아과 선생님들이 삽관(intubation)이 실패했다고 하나요?” (보통 신생아가 태어나고 호흡에 문제가 되면 소아과 선생님들께서 바로 기관삽관을 통해 호흡을 확보하는 시도를 합니다)

“뭔가 잘 안된다고 합니다, 지금 CPR 중이라고 합니다”

보통은 태어나자마자 CPR을 해야할 정도의 문제 상황이라면, 적어도 이 병원에서는, 뭔가 일반적인 문제상황이 아님은 분명했다.

“헤드램프랑 기관절재술 세트 준비해주세요, 바로 갈께요”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신생아실로 향했다. 태어난지 몇시간도 안된 아이에게 목을 가르는 수술을 한다는 것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분만실에 도착하니, 산모는 막이 쳐져 있어서 얼굴을 볼수 없었지만, 여러모로 불안한 기운이 가득했다. 분만을 진행해주신 교수님은 조금은 담담한 표정이셨고,

“바로 (수술을) 시작할까요?” 라고 물자, 같이 있으셨던 소아과 선생님은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라면서 삽관을 다시금 진행하고 있었다.

소아과 선생님은 “시야가 나쁘지는 않았는데 이상하게 잘 들어가지 않는 것 같아요, 계속 시도했더니 이제는 성대가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한번더 시도하겠습니다”

그리고, 멀리서 지켜보고있으니 뭔가 진행은 되는듯했다.

“앰부 주세요, 짜보겠습니다” 소아과 선생님의 이야기와, 조만간 “산소 포화도 조금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일단 들어간 것 같으니 빨리 중환자실로 가서 벤트(*벤틸레이터) 걸겠습니다” 라고,

나와 옆에있던 전공의는 조금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잘 되었나보다. 산전진단에서 잘 발견되지 않았다면 뭐가 문제였을까?”

조금 상황이 정리되고 보니, 산모는 고위험군에 속해있었고, 조금은 일찍 태어난 아기, 양수의 양도 정상치를 벗어나있었다고. 복벽결손도 동반되어있었다.

 

[2] 한숨 돌리고, 외래를 보고 있었다. 외래는 조금씩 지연되면서 쉴틈없이 4시간이 흘렀고, 중간중간오는 부재중 전화는 무시하고 넘어갔다.

외래가 끝나고 기지개를 한번 펴는데 전공의로 부터 전화가 왔다.

“교수님, 아까 그 애기 기관절개술 필요할것 같다는데요? 외래 보시는 중간에 CPR이 나서 계속 진행하고 합니다.”

아, 더는 피할수 없겠구나. 서둘러 신생아 중환자실로 향했다. 약 2시간 이상 CPR을 하고 있었고, 50 남짓되는 산소포화도로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내 짧은 의사 경력에서 가장 어린 – 태어난지 5시간도 안된 – 신생아의 기관절개술을 중환자실에서 CPR을 하는 가운데 시행하였다. 시술 자체는 15분만에 마무리되었고, 시술 후 기관절개관을 넣어 산소포화도를 끌어올리는 것을 보고, 나머지는 소아과 선생님들께 부탁드리고 서둘러 중환자실을 빠져나왔다.

 

[3] 이 환아는 며칠 지나지 않아, 다학제 진료가 열렸다. 우선은 환아가 과연 산소호흡기를 땔수 있을지, 의식은 돌아올지의 문제에 앞서, 복벽결손을 치료하기로 하였고, 그 수술 전에 대체 어떠한 이유 때문에 삽관에 문제가 있었는지 알아보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전신마취 상태에서 상기도 문제 및 후두부위를 검진하여 문제해결의 방향을 설정하는 수술을 ‘후두현수내시경 검사 (suspension exam)’ 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수술장에서 확인된 환아의 소견은, 아래의 사진과 비슷하였다. 완전 후두 폐쇄.

Laryngeal Atresia (출처: https://www.chop.edu/conditions-diseases/laryngeal-atresia)

돌이켜보건데, 소아과 선생님들께서 후두를 관찰했음에도 삽관이 안되었던 것은 후두가 막혀있었기 때문이고, 삽관이 되었다고 ‘착각’한건 식도로 들어간 탓인데, 잠깐 산소포화도가 오른 이유는 동반기형으로 식도-기관누공(Tracheo-esophageal fistula)가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라고 맞아떨어지는 상황이었다.

보호자와 처음 만나 환아의 상태에 대해 설명하고, 향후 치료 방침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치료는 한참 키운다음에 성대 부위에 대한 재건이 필요할 것이다. 그 시점이 언제될지는 모르겠다. 일단은 아이의 의식이 돌아와야겠지. 거의 저산소증 상태로 4~5시간 지체 되었던 환아였기 때문이다. 보호자분들은 그래도 생각보다는 잘 이겨내고 있었다.

다학제 진료 때에도 신생아 중환자실을 보시던 소아과 교수님께서도 ‘쉽지 않지 않을까요?’ 라고 완곡하게 표현하셨다.

 

[5] 몇 개월간 한참을 잊고 있었다. 우연히 소아 외래 환자 차트를 프리뷰하는데, 몇개월 되지도 않은 신생아가 병력이 길게 적혀있는 아이가 있었다.

누굴까. 하고 차트를 들여다보니 아..이 아이구나..퇴원도 했네??

진료실에 들어온 애기는, 기관절개술 및 후두 폐쇄로 인해 말을 못할뿐, 유모차 속에서 막 100일이 된 여느 애기들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몸부림치며 눈동자를 굴리며 뭔가 말할려고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있었다.

참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파고드는 가운데, 보호자분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6] 9월 중순 쯤 집에서 잠을 자려는데 비슷한 연락을 받았다.

“교수님 방금 태어난 아이가 저산소증으로 CPR중이라고 합니다. 기관절개술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한번 경험했던 탓에, 이번에도 잘 해결되면 또 건강하질수 있는 애기이기를 기도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조금은 다른 조건이었던것 같았다.

 

[7] 주치의는 “조산으로 폐가 거의 발달하지 않은 아이라 삽관이 성공적으로 되었음에도 기체교환이 잘 되지 않은(=산소 공급이 안되는) 애기입니다. 보호자분들께서 뭐라도 시도를 해봐달라는데 기관절개술을 한다고 해도 잘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부탁드립니다” 라고 전달해주었다.

역시 CRP을 진행하면서 기관절개술은 오래지나지 않아 끝났다. 기관절개관도 아무문제 없이 넣었고, 산소 포화도는 잠깐 오르는 듯하였다. 역시 뒷부분은 소아과 선생님들께 맡기고 나왔다.

 

[8] 며칠 뒤 차트를 열어보니, 몇시간 지나지 않아 사망 선고를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고위험 산모로 부터 30주에 조산으로 태어난 아기. 그러나 워낙 미숙하여, 의료 기술로도 어떻게 할수 없었던.

30주 동안 아이를 품고 있던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육아를 하고 있다보니, 이러한 부분들이 더욱 가슴 한구석을 강하게 후벼파는듯 했다.

[9] 한 아이는 살았고, 한 아이는 살지 못했다…아마 살수 없었던 상황이었겠지. (소아)의사들이 하는 일이란, 살고자 하는 의지를 돕는 도우미 정도 일 것이라. 그 과정에 생길 수 있는 수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는데, 점점 지원자는 줄어들고 숫자도 줄어들고.

나 역시 갓 태어난 아이에게 기관절개술을 해야한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 “잘못되면 소송걸리는거 아닌가?” 였는데.

의대생이 많아진다고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지 않는것은 분명한데, 문제를 파악해놓고 말도 안되는 대책을 마련하는 상황을 보고 있자니 답답할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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