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개월간의 이야기

오늘도 새벽 4시에 중환자실에서 오는 연락을 받고, 병원에서 응급 시술을 마치고 난 뒤 입니다.

혼돈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요즘, 비의료인 직군의 지인분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어떻게 될것 같나요? 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답은 저도 모릅니다. 앞으로도 모르겠고요. 

초기에는 병원이 전체적으로 셧다운되면서 한가해진 덕분에 밀렸던 관심사(카메라 등등)에 대한 글도 쓰고자 했는데, 슬슬 병원이 일부 비상 체제 하에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요즘에는 오히려 번아웃될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안그래도 과 내, 분과 내에서 막내라서 진짜 이일 저일 다 해야했는데, 6월에 전임의 선생님께서 복귀를 해주신 덕분에, 적어도 수술장에는 조금 덜 들어가도 되게 되고 간만에 글을 적어봅니다.

제가 즐겨보는 유튜브가 있습니다. ‘유나으리’라고, 사실 이번 일이 터지기 전이었던 작년 가을 즈음부터인가, 꽤 의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분이셨는데, 최근에 벌어진 사태로 인해 올라온 영상이 있어 링크를 달아봅니다. 비록 소속 기관의 내부자이긴 하지만, 애매하게 할꺼면 시작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비판에는 동의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또 제 동기이자, 제가 USMLE를 공부할 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미국 이민에 성공한 친구가 만든 유튜브 입니다. 정부의 ‘대책없는’ 의대생 증원에 대해 치밀하게 벌어질 정부의 가능성 있는 그럴듯한 ‘대책들‘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이미 한 직군을 악마화 시키고 맘대로 주무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상황에서, 앞으로의 젊은 의사들에게 닥칠 암울한 미래의 이야기가 될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이런 (새내기 의사들에게) ‘암울할 대책’ 조차 없는게 현 정부가 아닌가 싶습니다.

‘의료붕괴’라는 단어와 ‘의사의 노예화’가 동의어는 아닐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사회주의적 의료도 ‘성공적 의료’가 될 수도 있을테니까요. 의료붕괴는 그런데 조금 다른 의미같이 다가옵니다. 많은 의사들이 K-의료가 무너진다고 곳곳에서 얘기하는데, 이미 전공의들의 피와 땀으로 버티고 있던 기둥인 것이 증명된 마당에 ‘우수한 K-의료’는 원래 없던 신기루와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병원에 의사가 적어진 상황, 그리고 내가 해낼수 있는 의료의 역량이 제한적이니 대폭 줄어든 진료, 수술만 할 수 있습니다. 무리했다가는 의사의 건강이 문제가 아니라, 수술 받고 치료 받는 환자들이 위험해집니다. 저 역시 지금의 둔화된 속도에서 밀린 수술만 4,5개월 치라, 6월 이후 신규 환자를 아예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료 체제의 변환은 생각보다 갑자기 오지 않습니다. 새롭게 병에 진단되고, 상급기관을 가야만 하는 환자분들의 진료 시점과 수술 날짜는 조금씩 미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전문병원에서 치료가능한 질병들은 나은 편이겠지요. 이전보다는 수술 전 후의 치료나 관리가 조금씩 늦어지거나 부족할 수 있게되는데, 이런 점들이 가시화되는 것은 매우 느린 것이고, 진짜 무서운 것은 최근의 맥페란 사태 등에 겹쳐, 왠만한 병원에서는 기저질환이 있는, 또는 고령의 환자 또는 매우 어린 소아 등의 치료를 미루거나,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될 것 같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의사 개인의 비도덕함이 아니라, 의료 소송 리스크 제거, 병원의 진료 효율 재고 등 다분히 자유주의 시스템에서 이루어지는 효율의 극대화라는 측면으로 봐야합니다.

의사의 공무원화가 무서운 지점은 바로 여기입니다. 효율의 극대화가 먹하지 않는 ‘월급쟁이’ 의 삶이라면,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안은 투입 시간을 줄이는 것이죠. 내가 일을 최대한 덜해서, 일하는 양 대비 단가를 높히는 방법을 취할수 밖에 없습니다. 맨날 OECD평균하면서 주로 인용되는 유럽 국가들이 의사가 많은 이유, 더 많이 뽑으라고 시위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른채 그저 의사 수가 늘어나면 내가 더 좋은 진료를 쉽게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파업이 아니라, 태업입니다.

이러한 큰 흐름은 아마 저보다 한세대 위의 교수님들은 어차피 지금 생길 문제는 아닐것이기에 현장을 지키고 있는 것이고, 전공의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현실일 것이기에 뛰쳐나갔는데, 저와 같은 주니어들은 이도저도 못하고 그냥 끓여지는 가마솥에 몸을 담구고 있는 개구리와 같은 신세일지도 모릅니다. 

제 나이 30대 후반, 저 연봉의 반이라도 갔으면 좋겠습니다. 말도 안되는 대중에 영합하는 발언으로 사태를 악화시킨 장본인의 얼굴은 박제를 좀 해둬야겠습니다. 의료가 공공성을 띄는 정책을 만드는 것은 필요한 한 축이겠지만, 그것을 이런식으로 풀어나갔으면 안됩니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유튜브 영상을 만들어볼 계획을 해보고있습니다. 블로그도 자주는 못하지만, 지금 이 혼란의 한 가운데의 기록을 남기고 싶습니다. 꼭 지금의 사태를 넘어선, 대학병원과 수련 등 소소한 이야기들을 남겨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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